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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에 별이 없더라도

호수
2025년 12월호
작가
조원희
발행일
2025/12/31
언어
한국어
장르
소설
잠에서 깬 나는 시계를 확인했다. 오후 2시. 침대 머리맡의 커튼은 걷혀 있었으나 창문에선 빛 한 점 들어오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죄책감이 느껴질 기상 시간이었지만 이제는 별 감흥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늘을 뒤덮은 거대한 모니터가 꺼진, 이른바 정전 이후로, 내 생활 패턴은 줄곧 흐트러지려는 조짐을 보였다. 나와는 달리 규칙적인 성희가 옆에 있었기에 한동안은 버틸 수 있었지만, 그녀가 떠난 후로는 매일같이 자고 일어나는 시간이 바뀌고 있었다. 전날 먹고 남은 피자 두 조각을 냉장고에서 꺼내 데운 나는 콜라도 한 캔 집어 들고 옥상으로 향했다. 요새 지어지는 집엔 보통 없는 공간이었다. 나 역시 성희와 살기 전엔 필요로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어느샌가 옥상은 내가 가장 아끼는 장소가 되었다. 나무로 만든 평상에 오랜만에 걸터앉았다. 지난밤 모든 준비를 끝냈기 때문에 가질 수 있는 휴식이었다. 나는 접시와 캔을 평상 위에 내려놓은 채 피자를 집어 먹으면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정전 이전엔 성희와 함께 이곳에 앉아 매일 밤 모니터 천장에 띄워지는 옛 별의 녹화된 영상을 보곤 했다. 그녀는 종종 말했다. 언젠가 저 천장 너머에 있을 진짜 별을 보고 싶다고. 하지만 이젠 낮이든 밤이든 하늘엔 가짜 별조차 하나 없이 까맣기만 했다. 피자 한 조각을 다 먹었을 때 초인종이 울리는 소리가 들렸다. 인터넷이 발달한 요즘 같은 시대에 남의 집에 직접 찾아갈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나는 아주 특별한 상황에 놓여있었다. 게다가 연락이라곤 일절 받지 않는 중이라 최근 이렇게 직접 방문하는 사람이 늘었다. 나는 짝을 잃은 불쌍한 피자 한 조각을 차가운 냉장고에 넣어두고 인터폰을 확인했다. 화면엔 잘 다린 검은 정장을 입고 흰 종이봉투를 든 익숙한 얼굴의 남자가 비쳤다. 성운이었다. 나는 현관으로 가 문을 열었다. "요즘 엄청 자주 오네." "한동안 못 보게 될 텐데 지금 많이 봐둬야 하지 않겠냐." 성운은 내가 들어오라는 말도 하지 않았는데 구두를 벗더니 자연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들고 온 종이봉투를 거실 탁자 위에 내려놓고는 냉장고를 열어 맥주 한 캔을 꺼냈다. 소파에 앉아 맥주를 벌컥벌컥 마신 그는 '캬' 하는 소리를 내뱉었다. 나는 내 집을 제집처럼 활보하는 성운의 행동이 어이없었지만 웃기기도 했다. 그리고 지극히 그답다는 생각도 들어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오히려 평소처럼 행동함으로써 아무렇지 않음을 연기하는 배려가 느껴졌다. "너 근무 시간인 거 아니야? 술 마셔도 돼?" "어차피 여기 있다가 바로 퇴근이라 상관없어. 그리고 너랑 놀아주는 것도 내 일인데 뭐 어때." "네 일은 나랑 놀아주는 게 아니라 내 멘탈 관리잖아. 게다가 네가 술 마시는 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 에휴, 너 같은 애가 나랏일을 다 하고. 인류의 미래가 참 밝기도 하다." "그치? 어두컴컴한 세상, 나라도 있어야지." 우리는 키득거리며 몇 차례 농담을 주고받았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어진 우리만의 인사 방법이었다. 성운이 맥주 한 캔을 다 마셔갈 때쯤, 나는 턱짓으로 탁자 위의 커다란 종이봉투를 가리키며 물었다. "근데 이건 뭐야? 혹시 또 어머님께서 반찬 보내주신 건가? 아직 저번에 주신 것도 다 못 먹었는데." "물론 그것도 있는데, 오늘은 다른 것도 많아." 나의 질문에 성운은 종이봉투의 내용물을 하나씩 꺼내며 답했다. "우선 성희 앨범. 엄마가 직접 만들었어. 나중에 천천히 봐. 원래는 사진 폴더를 너한테 보내려고 했다는데, 네가 지금 휴대폰을 못 쓰잖아. 엄마가 그거 듣고는 인쇄소까지 다녀왔어. 안 그래도 인쇄소 별로 없는데 정전 이후로 죄다 폐업해서 옆 도시까지 가야 했대." "…감동이네. 나중에 감사하다고 전해줘." "네가 직접 해. 여기 새 휴대폰도 가져왔으니까. 네가 연락을 안 받는 게 하도 답답해서 특별히 내 명의로 새로 하나 개통했다. 어때, 고맙지?" "그런 방법이 있었네, 생각도 못 했어. 게다가 이거 최신 기종 아니야? 돈 좀 들었겠다." "그렇지. 이 와중에도 일하는데, 다 쓰고 죽어야 안 억울할 거 아니야. 그러니까 고맙다고나 해." "그래그래, 고맙다. 어차피 앞으로 얼마 쓰지도 못하겠지만." 고맙다고 해달라니까 마지못해 말해준다는 말투였지만 실은 진심으로 고마웠다. 내가 성희의 남편이라는 사실과 함께 개인정보가 유출된 이후로, 전 세계에서 온갖 사람들이 쉬지 않고 전화와 문자를 해대는 통에 나는 지인과 타인의 연락을 구별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휴대폰을 꺼둔 채 생활하고 있었는데 확실히 내 명의가 아닌 성운의 명의라면 더는 낯선 이들의 연락에 시달리지 않아도 될 터였다. 나는 곧장 기존 휴대폰의 데이터를 전부 새 휴대폰으로 옮겼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마이에 넣을 에너지 큐브와 설명서. 미리 익숙해지라고 가져왔어." 성운은 종이봉투에서 주먹만 한 크기의 검은색 큐브를 꺼내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그것은 보잘것없는 내가 정부로부터 호위 겸 감시를 받는 이유였다. 저 작은 정육면체에 전 인류의 목숨이 달려있었다. 그런 중요한 물건이 내 눈앞에 있다고 생각하니 그 무게감에 나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그렇게 긴장 안 해도 돼. 내구성이 좋아서 망치로 때려도 끄떡없고, 위치추적 기능이 있어서 분실 위험도 없으니까. 그냥 막 다뤄. 익숙해지라는 건 마음가짐을 말하는 거야.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어차피 네가 못 하면 아무도 못 해. 네가 망쳐버려도 그 누구도 너를 원망하거나 탓할 자격 없어. 그러니까 마음 바뀌어서 하기 싫어지면 말만 해. 진짜 괜찮으니까." "응, 고마워. 그런데 걱정하지 않아도 괜찮아. 나는 이미 결정했고, 번복은 절대 하지 않을 테니까. 성희 유언은 꼭 들어줘야지." 나는 웃어 보였지만 성운은 오히려 측은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네가 그랬잖아. 저 하늘엔 이미…." "됐어. 이 얘기는 이제 그만하자. 일하러 왔다는 사람이 그런 소리를 하면 어떡하냐? 역시 너 놀러 온 거지?" "알겠어, 알겠어. 부부는 닮는다더니, 이제는 나보다 네가 더 성희랑 닮았네. …고맙다." 우리답지 않게 진지한 얘기를 나눈 후 우리는 성희의 앨범을 함께 보며 시간을 보냈다. 어머님께서 고르신 사진들이라 그런가, 말이 성희의 앨범이지 사실상 남매의 가족 앨범이나 다름없었다. 앨범엔 두 사람이 아기일 적부터 독립할 때까지 커가는 모습이 빼곡히 담겨있었다. 성운은 자신의 사진도 있는 줄 몰랐는지 상당히 부끄러워했다. 나는 그런 녀석을 놀리면서 성희의 어릴 적 모습을 감상했다. 그러다 고등학교 현장체험학습 사진 구석에서 성희를 슬쩍 쳐다보는 내 모습을 발견하자 성운은 잘 걸렸다는 듯이 역공을 시작했다. 고등학생일 때부터 내가 성희에게 관심을 가졌다는 사실은 성운에게 비밀이었는데 이런 방식으로 들켜버릴 줄은 전혀 몰랐다. 부끄러워진 나는 얼른 성운을 내쫓으려 했으나 그는 당한 걸 전부 갚아줄 생각에 물러나지 않았고, 결국 저녁까지 함께 먹고 난 후에야 겨우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혼자 남은 나는 성운의 말대로 어머님께 전화를 걸어 안부 인사를 나누고 다시 앨범을 집어 들었다. 성희를 조금 더 추억하고 싶었다. 그렇게 혼자서 앨범을 한 번 더 펼치려던 순간 더 좋은 생각이 났다. 영상을 보는 것이었다. 성희는 평소에 사진이나 영상을 잘 찍지 않았지만 유일하게 기록하는 걸 좋아하는 순간이 있었다. 내게 과학을 가르칠 때였다. 인류의 과학과 기술은 발전이 멈춘 지 오래였다. 과학 지식이 필요한 모든 일은 로봇이 대체했고, 로봇 생산마저 로봇의 역할이었다. 그래서 과학은 돈을 벌 수단이 되지 못했다. 그 누구도 과학에 흥미를 갖지 않았다. 성희만 빼고 말이다. 그녀는 이 세상의 유일한 과학자이자 기술자였다. 객관적으로 성희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일 때부터 그녀는 학교 내에서 유명인사였다.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우등생이면서, 자신은 졸업하면 진학도 취업도 하지 않고 집에서 과학만을 공부할 거라 일찌감치 선언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성희의 그런 점에 관심이 갔다. 다른 사람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모습이 멋졌다. 자연스레 그녀의 관심사를 나도 이해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도 취미 삼아 과학을 공부해보려 했으나, 마땅한 학습자료가 없어 쉬운 일은 아니었다. 나와 학년이 다른 데다 언제나 친구와 붙어 다니는 그녀에게 말을 걸 용기가 없어 그 시절 내 마음은 짝사랑으로 끝나고 말았다. 성희가 성운의 여동생인 줄 알았다면 그를 통해 연락을 시도해 봤겠으나 그때는 그것을 몰랐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나 성운의 집에 찾아갔을 때 우연히 성희와 마주치고 나서야 두 사람이 남매임을 알게 되었다. 그 날 이후로 나는 성운의 집에 밥 먹듯이 놀러 갔다. 과학에 대한 나의 흥미를 밝혔을 때 성희는 무척 반가워했다. "맞아요! 혼자 공부할 내용을 정하고 자료를 찾는 게 절대 쉬운 일이 아니죠. 아, 그럼 혹시 저한테 배워보실래요? 진짜 잘 가르칠 자신 있는데. 저 학교 다닐 때도 공부 엄청 잘 했거든요." 내가 과학을 무엇으로 어떻게 공부할지 모르겠다고 하니 성희가 한 말이었다. 나는 본업이 있었고, 그녀만큼 똑똑하지도 못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녀와 같은 수준에 미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성희는 순수하게 자신의 관심사를 공유할 사람이 생겼음에, 무언가를 가르치는 기쁨을 느낄 수 있음에 행복해했다. 그녀가 행복하면 나 역시 행복했고, 과학 수업도 생각보다 더 재미있었다. 대학에서 배운 사회학과 경제학이 세상을 넓게 보게 해주었다면, 과학은 세상의 본질을 깊게 보는 방법을 알려주는 학문이었다. 결혼하고 신혼집에 칠판까지 설치한 성희는 더욱 열과 성을 다해 나를 가르쳤다. 그리고 매번 그것을 영상으로 찍어두었다. 내가 원할 때 복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성희가 있을 땐 종종 보곤 했지만, 최근엔 이래저래 바빴던 데다 휴대폰을 전혀 사용하지 않아 그 존재를 까맣게 잊고 있었다. 확인해보니 동영상은 모두 새 휴대폰에 무사히 전송되어있었다. 나는 낮과 마찬가지로 깜깜한 옥상으로 올라가 평상에 앉고는 가장 최근 영상을 틀었다. 성희가 과학 얘기를 할 때 특유의 발랄하고 신난, 밝디밝은 그 목소리가 어두운 하늘을 향해 퍼지기 시작했다.
"오늘 수업의 주제는 나의 새 연구 과제를 이해하기 위한 기초 지식이야. 일명 '블랙홀 문명은 어떻게 유지되는가.' 사실 이건 아직 배울 단계가 전혀 아닌데, 이 내용을 빨리 가르쳐주고 싶어서 일정을 앞당겼어. 이해 안 되는 부분이 많을 테니 일단 전체적인 흐름을 먼저 다루고, 그다음에 세세한 내용을 알아보자. 어라, 벌써 궁금한 게 있어?" 영상 속에서 뒷모습만 보이는 나는 질문이 있다는 의미로 오른손을 들고 있었다. '새 연구 과제'라는 말이 마음에 걸린 것이었다. "응, 수업 외적인 부분이긴 한데, 우주선은…." "에이, 수업시간엔 수업에 관한 질문만 해야지. 그런 건 나중에 해, 나중에." 성희는 내가 무엇을 질문하려는지 눈치채고 얼른 말을 돌렸다. 나는 당장 궁금증을 해결하고 싶었지만, 수업시간에 집중하는 건 우리의 규칙이었기에 나는 일단 그녀에게 수업을 계속해달라고 말했다. "크흠. 좋아, 다시 시작할게. 알다시피 인류는 먼 과거에 블랙홀을 통째로 덮는 공을 만들었어. 우리는 그 위에 살고 있고. 그러니까 오늘 수업 주제의 '블랙홀 문명'은 우리를 말하는 거야. 먼 옛날엔 인류가 저 하늘에 떠 있는 별에 살았대. 정확히는 별 주위를 공전하는 행성에서 말이야. 그러다 그 행성의 자원을 전부 써버렸고, 어쩔 수 없이 우주를 개척하기 시작했어. 행성과 별을 여러 차례 전전한 인류는 마지막으로 우리 발밑에 있는 블랙홀에 자리 잡았지. 그 이후로는 이주할 필요가 없어졌어. 이유는 두 가지야. 첫 번째, 블랙홀은 죽지 않아. 별은 시간이 지나면 커지기도, 작아지기도 하며 모양을 바꾸고, 끝내 죽어버려. 그럴 때마다 인류는 엄청난 비용을 소모해 다른 별로 이주해야만 했어. 반면 블랙홀은 그럴 걱정이 없지. 호킹 복사에 의해 질량이 계속해서 감소하긴 하지만, 그만큼의 질량을 다시 넣어주기만 하면 이론상 영원히 살 수 있거든. 그래서 블랙홀에게 먹일 밥을 찾으러 지금도 우주엔 수많은 무인우주선이 일하고 있어. 여기까진 다 이해되지?" "호킹 복사만 빼고. 나중에 설명해줄 거지? 전체적인 흐름을 먼저 다룬다고 했으니 우선 계속해줘." "좋아. 우리가 블랙홀에 계속 머무르는 두 번째 이유는 블랙홀로부터 쉽게 많은 에너지를 얻어낼 수 있다는 거야. 그거 알아? 우리 발밑의 블랙홀을 뒤덮은 구는 사실 거울이야. 거울로 블랙홀을 덮고 있는 거지. 거울과 블랙홀, 이 두 가지만 있으면 에너지를 얻는 게 아주 간단해. 먼저 거울을 살짝 열고 그 틈에 전자기파를 쏘면 작용권을 통과하며 초방사 산란이 일어나고…." "잠깐, 뭐라고?" "음, 최대한 쉽고 간단하게 말해볼게. 1번, 거울을 열어 안에 빛을 쏜다. 2번, 빛이 블랙홀의 에너지를 먹고 강해진다. 3번, 다시 거울을 열어 강해진 빛을 에너지로 바꾼다." "오, 쉽다." "그래, 이 설명만큼이나 쉽게 에너지를 얻을 수 있게 된 거야. 게다가 양도 엄청나서 아무리 펑펑 써도 남아돌았어." "그러면 저번에 얘기한 에너지 질량 변환기도 그때부터 마음껏 쓸 수 있었겠네. 이었나? 그 공식을 배울 때 언급한, 에너지로 질량을 만들어낸다는 기계 말이야. 옛날엔 효율이 낮아서 못 썼다며." "그렇지! 그 전엔 자원이 부족하면 대부분 행성 탐사를 통한 채취로 해결했어. 그래서 늘 고갈의 문제를 걱정해야 했지. 정말 희귀한 물질만 가끔 에너지 질량 변환기로 만들어냈어. 그런데 이제 에너지뿐만 아니라 물질까지 무한해진 거야. 인류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가 열렸어. 옛날 사람들은 우리보다 훨씬 많이 일했는데도 버는 돈 대부분을 물질과 에너지에 썼거든. 옷, 음식, 집, 차, 수도, 전기…, 그런 것들 말이야." "그 시대 사람들은 힘들었겠네. 소설 한 편, 영화 한 편 보기도 어려웠겠다." "그렇진 않았을 거야. 생활비가 많이 필요한 만큼 문화생활 비용이 적었거든. 지금은 식비가 사실상 공짜니 영화 한 편 보는 비용이 몇 달 치 식비와 같지만, 당시에는 한 끼 식사 가격쯤 했으려나?" "신기하다. 그러면 우주선은 비쌌을까?" "응? 어, 아마 그랬겠지?" 성희는 내가 여기서 우주선 얘기를 또 꺼낼 줄은 몰랐는지 상당히 당황한 눈치였다. "그런 걸 한 개인이 연구 프로젝트라면서 만들 수 있다니, 우리는 참 좋은 시대에 살고 있구나." "그, 그치! 옛날 우주선 비용에 비하면 지금 우주선 비용은 완전 껌값이지, 껌값!" 내가 무슨 말을 할까 긴장하고 있던 성희는 내 입에서 좋은 소리가 나오니 금세 활짝 웃었다. 내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하는 그녀를 보고 있으니 귀엽기도 하고 재미있어 조금만 더 놀려주고 싶어졌다. "그래도 어디까지나 '할 수 있다' 수준이지, '쉽다' 정도까지는 아닌 비용이었던 것 같은데." "으, 응…." 성희는 다시 물에 젖은 솔방울처럼 어깨를 움츠렸다. 이제는 내 질문이 수업 내용과 조금이나마 연관되었으므로 회피할 명분도 없었다. "근데 왜 우리 아내분께선 그런 걸 하다가 말고 뜬금없이 새 연구 프로젝트를 꺼내오셨을까?" 성희는 하늘을 뒤덮은 천장 너머에 있을 진짜 별을 보는 것이 자신의 소원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런 그녀가 내게 '둘이서 별을 보러 우주에 가자'라고 로맨틱한 제안을 했을 때, 나는 그 사랑스러운 부탁을 도저히 거절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돈을 지원하고, 그녀가 우주선을 만들기로 한 것이 이날로부터 몇 달 전이었다. 그녀의 소원 성취를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나 역시 무척 기대돼 민간 우주선 신청에 필요한 서류도 미리 준비해놓았었다. 그런데 성희가 갑자기 새 연구 과제라는 말을 꺼냈으니, 나는 그녀를 놀리고 싶은 마음과 별개로 그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다. 성희는 내 눈치를 살살 보다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는지 갑자기 허리를 꼿꼿이 펴고는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 "어쩔 수 없었어! 우주선 항로계산에 필요한 자료를 마이에게 요청하다가 엄청난 걸 알아버렸는걸." "뭔데 그래?" "그게…, 블랙홀이 밥을 안 먹은 지 좀 오래됐대." "얼마나?" "음, 아마도 말이지." 성희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인류가 내년에 멸망할 정도?"
성희의 말을 인용하자면, 우리는 벽돌로 만들어진 아치 위에 살고 있었다. 아치의 각 벽돌은 블랙홀에 의해 아래로 끌어 당겨진다. 아치는 그렇게 유지된다. 그러나 밥을 먹지 못해 홀쭉해진 블랙홀은 그럴 힘이 없어졌다. 그리고 내년이면 충분히 끌어 당겨지지 못한 블록 하나가 아치의 위로 빠져버릴 것이라고 성희는 설명했다. 균형을 잃은 나머지 블록은 전부 밑으로 떨어지고, 처음 위로 빠졌던 블록도 결국은 같은 운명을 맞는다. 성희는 블랙홀의 먹이를 찾을 수 없는 이유가 우주의 가속 팽창 때문일 거라고 했다. "우주는 빅뱅이 일어난 순간부터 줄곧 팽창하고 있어. 그리고 그 속도는 점점 빨라지지. 풍선 위에 찍힌 두 점을 생각해봐. 풍선이 빨리 부풀수록, 두 점은 빠르게 멀어져. 그러다가 그 속도가 빛보다 빨라지면 결코 닿을 수 없게 되는 거야. 빛조차 돌아올 수 없는 경계, 블랙홀의 사건의 지평선과 비슷하지. 이 경우엔 우주론적 사건의 지평선이라고 불러. 그리고 우리를 기준으로 하는 우주론적 사건의 지평선 안에서, 인류와 블랙홀 밖에는 이제 그 무엇도 남지 않았어. 그게 블랙홀이 굶고 있던 이유야." 내가 이 말을 듣고 가장 먼저 든 감정은 인류의 멸망에 대한 두려움이 아니었다. 당시의 내게 그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나는 그것보다 성희와 별을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슬펐다. 성희의 말대로라면 우주론적 사건의 지평선 안엔 별이 없었다. 성희가 그토록 보고 싶어라 하던 별은 이미 우리를 영영 떠난 지 오래였다.
마지막 수업 이후엔 줄곧 비일상이 이어졌다. 성희는 마이(Main Artificial Intelligence의 약자다)와 함께 많은 양의 자료와 계산을 주고받아 끝내 자신의 추측이 옳다는 결론을 얻어냈다. 성희는 마이에게 이 상황이 될 때까지 왜 아무런 대비책 마련도, 보고도 하지 않았느냐 물었다. 마이는 그런 건 자신의 역할 밖이라고 했다. 마이가 만들어질 당시 블랙홀의 죽음은 너무나 먼 미래였다. 그래서 과거의 과학자들은 후손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리라 믿고 마이에겐 문제를 해결할 의무도, 능력도 주지 않았다. 그들도 자신들 이후로 몇 세대 만에 과학자란 직업이 없어질 줄은 몰랐을 것이다. 마이는 인류가 고향 행성에서부터 수많은 행성 간 이주를 할 동안 늘 자원의 고갈은 신경 쓰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나는 그 말이 '너희가 잘못했으면서 왜 나한테 그래?' 하고 불평하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인공지능에게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인류가 어떤 상황에 놓여있는지는 금방 세상에 알려졌다. 그리고 사회가 혼돈의 도가니에 빠지는 것은 그보다 더 빨랐다. 사람들은 정부에게 해결책을 요구했으나 정부도 혼란스럽긴 마찬가지였다. 돈으로 과학자를 더 고용할 수만 있었다면 기꺼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결국 성희 외의 선택지는 없었다. 성운이 소속된 대책위원회도 이때 만들어졌다. 그들의 주된 임무는 민심 안정화였다. 성희의 조언대로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절약하고 블랙홀에게 먹일 쓰레기를 모아달라고 권고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하늘을 꺼 정전을 일으켰다. 멸망의 날은 조금 늦춰졌지만 그 대가로 고갈의 시대가 다시 찾아왔고 인류는 활기를 잃었다. 늦게나마 과학을 배워 도움이 되어보겠다는 사람은 분명 있었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만에 교사조차 없이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위기를 해결할 만큼 성장한 인재는 나타나지 않았다. 해결책 마련이라는 거대한 부담을 홀로 짊어진 성희에겐 더는 교사 노릇을 할 시간이 없었다. 한 번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나와 함께 수업한 영상을 인터넷에 게시해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우리 둘의 개인정보가 노출되는 결과만 불러일으켰다. 응원과 희망의 메시지도 많았지만, 결과가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한 비난과 절망의 메시지도 많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부정적인 말의 비율이 높아졌고,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휴대폰을 보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성희는 결코 희망을 놓지 않았다. 나는 그녀가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나와 함께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알차게 보내길 바라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나 할 수 있다고 되뇌며 웃는 얼굴로 연구에 몰두하는 성희에게 나는 그런 말을 꺼낼 수 없었다. 성희는 나의 마음을 읽은 듯 한 번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지금을 위해 평생 과학을 공부한 건가 봐. 내가 끝내 해결책을 발견하지 못하더라도 나는 이 문제에 도전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기쁘고 자랑스러울 거야.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잖아. 절대 도망치지 않을래." 나는 일을 그만두었다. 대신 나도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성희가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돕는 것이었다. 물론 정부의 지원을 받는 그녀에겐 이미 많은 조수가 있었지만, 남편인 나만이 할 수 있는 일도 있었다. 성희는 처음엔 내게 잡다한 심부름을 시키는 걸 미안해했지만 내 나름의 각오를 느낀 후부터는 미안함 대신 고마움을 표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최선을 다했다. 그러나 노력에 반드시 결과가 따라주지는 않았다. 성희는 1년이 지나도록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성희가 위기를 알아채지 못했다면 인류는 이때쯤 멸망했을 것이다. 하지만 블랙홀에 질량을 최대한 먹인 덕분에 우리의 시간은 다시 1년이 남아있었다. 블랙홀의 수명을 깎아 먹는 에너지 생산을 줄이기 위해 모두가 에너지를 절약한 덕도 컸다. 하지만 최대한의 노력을 하고 나니 사람들은 오히려 초조해했다. 이제는 더 할 수 있는 것도 없이 얌전히 멸망을 기다려야 한다는 무력감 때문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끼지 말아야 할 것에까지 손을 댔다. 마이의 에너지를 자신들이 쓰기로 한 것이다. 성희는 이에 우려를 표했다. "마이가 에너지를 많이 소모하는 건 사실이지만 그건 그만큼 많은 일을 하기 때문이야. 혹시나 껐다가 문제가 생기면 어떡해? 마이는 인공위성이잖아. 다시 켜려면 우주선에 에너지 큐브를 실어 직접 전달해야 해. 그런데 우주선 조종은 전부 마이의 일이라 한 번 끄고 나면 다시 켤 방법이 없어. 알잖아, 그때는 나한테 기대지도 못할 거야." 그러나 성희도 정말 문제가 생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게다가 사람들은 1년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깜깜무소식인 그녀에게 신뢰를 잃어가고 있었다. 아무리 세계의 유일한 과학자라 해도 성희는 묻혀있는 한 자료를 발견했을 뿐인 아마추어에 불과했다.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은 사람들의 욕구를 저지하기엔 역부족이었다. 생존 본능에 미친 사람들은 이성적인 판단을 하지 못했다. 결국, 마이는 자신의 마지막 임무를 수행했다. 자신으로부터 에너지 큐브를 꺼내 우리에게 전달할 우주선의 항로를 계산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이가 꺼지자마자 문제는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났다. "쉽게 말하자면, 우리 발밑의 거울 안에 빛이 남아있어. 그리고 그 빛은 점점 강해지는 중이고." "항상 그랬던 거 아니야? 거울을 살짝 열어 빛을 빼내면 되잖아. 설마…." "응, 그건 마이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어. 그리고 빛이 이대로 강해지게 두면 이내 거울이 반사하지 못할 정도가 되고 말 거야." "그럼 어떻게 되는데?" "우리 발밑이 통째로 터져. 폭탄처럼." 나는 말문이 막혔다. 1년이 남은 줄 알았던 멸망의 순간이 갑작스레 코앞까지 다가왔다. 이 상황을 해결할 가능성이 한 가지 떠올랐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성희에게 물었다. "우리 우주선은 지금 이륙 가능한 상태야?" "이륙은 할 수 있어. 항로계산도 마이가 아니라 내가 만든 프로그램으로 하고." "그러면 그걸로…." "그런데 왕복이 불가능해. 미완성이라 편도로 가는 수밖에 없어. 마이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어도 재부팅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데다, 사람 한두 명 구하는 건 인류 전체를 구하는 일에 비해 우선순위가 밀릴 게 분명해. 마이를 다시 깨운다 해도 블랙홀의 폭발을 막는 것일 뿐, 블랙홀이 작아지는 문제는 그대로니까. 어쩌면 인류가 멸망하는 것보다 늦어질지도 몰라. 일단 가면 못 돌아온다고 생각해야 해." 나는 내심 크게 놀랐다. 성희는 누군가 희생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보상은 인류의 구원이 아니다. 1년, 예정된 멸망을 고작 1년 늦추는 것에 불과했다. 그리고 그 희생자가 누가 될지는 명백했다. 하지만 그건 괜찮았다. 적어도 나는 그럴 각오가 되어있었다. 지금은 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이륙은? 언제 할 수 있어?" "…아마 그 날보다는 늦을 거야." "아." 예상했던 답변이었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언제나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당당하게 말하던 성희는 그 순간만큼은 시선을 내리깔았다. 성희가 말하는 '그 날'이 무엇인지 나는 알고 있었다. 그것은 마지막 날, 끝을 의미했다. 야속하게도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흘렀다. 끝은 순식간에 다가왔다.
나는 검은색 정장을 입고 성희의 사진 앞에 섰다. 왼팔에는 줄무늬의 띠가 둘려 있었다. 내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 성희가 이미 세계적인 인사가 되어서였을까. 뉴스에서나 보던 유명한 사람들도 찾아와 상자에 봉투를 넣었다. 성희가 불치병을 발견한 것은 중학생일 때였다. 뇌의 어느 세포가 점차 줄어드는 병이었다. 고통이나 전조증상은 없지만, 어느 순간 임계치에 도달하면 일주일 내로 죽는다고 했다. 성희에게 내 마음을 고백했던 날 병의 존재에 대해 들었다. 나는 전부 알고서 그녀와 함께하길 택했다. 성희가 별을 보고 싶다고 말할 때마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시한부 인생은 주어진 시간이 짧은 만큼 더 원대한 꿈을 꾸는구나. 그래서 성희가 우주선을 만들어 함께 별을 보러 가자고 했을 때는 무척 기뻤다. 그녀의 짧은 삶에 걸맞은 큰 소원에 내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무엇보다 병마에 굴복하지 않고 희망을 품은 채 살아가는 그녀가 자랑스럽고, 또 사랑스러웠다. 성희는 애초에 블랙홀이 어떻게 되든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가장 먼저 죽을 것은 그녀였으니까. 그 사실을 내게만 귀띔해주고 나와 함께 별을 보며 마지막 시간을 소중히 보낼 수도 있었다. 만약 성희가 그러길 원했다면, 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그리하겠다 말했을 것이다. 별이 없는 우주라 해도 그녀와 함께 기꺼이 보러 갔을 것이다. 하지만 성희는 그러지 않았다. 병으로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남을 위해 살았다. 자신이 이미 죽고 없을 세상의 모든 사람을 위해 자신의 꿈을 희생했다. 그런 그녀는 죽는 순간에도 평소처럼 밝게 웃는 표정으로 내게 마지막 유언을 남겼다. "약속 못 지킨 마당에 염치없지만, 마지막으로 부탁 하나만 할게. 내가 없어도, 혼자라 해도, 꼭 별을 보러 가줘. 그 광경을 눈과 기억, 그리고 온몸에 빼곡히 담아줘.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내가 당신을 알아볼 수 있게." 성희의 장례는 3일간 치러졌지만, 나는 첫째 날 밤 성운과 어머님께 양해를 구하고 집에 돌아왔다. 내겐 성희의 죽음을 슬퍼할 시간이 없었다. 나는 곧장 우주선 이륙 준비에 착수했다. 정신없는 시간이었다. 외롭고 힘들었지만, 성운을 비롯한 많은 사람의 도움이 있었기에 지금에 다다를 수 있었다. 내가 볼 수 없는 곳에서 그들 역시 우주선 이륙을 위한 많은 준비를 해주었다. 덕분에 나는 오로지 우주선에 탑승할 준비에만 최선을 다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성희의 앨범은 정말이지 가장 큰 힘이 되어주었다.
우주선은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에 나를 배웅해준 사람은 그리 많진 않았다. 그래도 성희의 장례식에도 얼굴을 비추었던 몇몇 높으신 분들과 시민들, 그리고 성운과 어머님은 나를 위해 먼 길을 와주었다. 어머님께선 끊임없이 우셔서 작별 인사를 하는 데 애를 먹었다. 반면 성운은 내가 잠깐 여행이라도 갔다 오는 듯 "갔다 와라" 한마디만을 할 뿐이었다. 하지만 그 떨리는 목소리만은 감추지 못했다. 나는 모두에게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고 우주선에 탑승했다. 성희는 우주선 창문에 커튼을 달아놓았다. 아마 그토록 고대하던 광경을 작은 창문을 통해서가 아니라 직접 우주로 나가 처음 바라보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우주선에 앉을 때도, 이륙할 때의 엄청난 가속도에 정신을 잃을 뻔했을 때도, 우주선이 정확한 궤도에 자리 잡을 때까지 기다리는 동안에도 계속 그 광경을 상상했다. 이윽고 때가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성희와 서로 입혀주었을 우주복을 혼자 낑낑대며 겨우 입었다. 모든 준비과정을 마치고 나는 에어로크에 섰다. 뒤에서 우주선 내부로 이어지는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기다리니 에어로크 안의 공기가 빠져나가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에어로크가 진공에 가까워지며 점차 그 소리는 들리지 않게 되었다. 이제 우주선 외부와 연결되는 문이 열릴 차례였다. 나는 우주의 모습을 에어로크 문틈보다 넓게, 온 시야에 가득 차도록 보기 위해 눈을 감았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문이 열릴 만큼 충분히 뜸을 들인 후 발에 힘을 줘 에어로크 밖으로 나갔다. 나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곧 눈 앞에 펼쳐질 장면을 상상했다.
별빛은 별이 남긴 과거의 그림자에 불과하다. 오히려 선명한 칠흑이야말로 우주의 진짜 모습이다. 영원에 달하는 시간이 지난다 해도 그 광경만큼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 집 옥상의 평상에 누워 정전 이후 하늘을 바라보았을 때와 같은, 내가 눈을 떴는지 감았는지조차 구분할 수 없는, 올곧기만 한 어둠. 그래서, 밤하늘에 별이 없더라도, 모니터 천장에 비치는 가짜 광경만 아니라면 썩 아름답지 않을까 싶었다. 인공적인 것들로 가득한 곳에 살았던 내겐 언제나 빛이 곁에 있었다. 내게 어둠이란 빛이 가려졌을 때 생기는 부산물이었다. 하지만 우주의 어둠은 다르다. 빛의 부산물로서의 어둠이 아니라, 그저 그곳에 스스로 고고히 존재하는 어둠이다. 내가 느낄 감정은 분명 빛과 헤어졌다는 소외감이 아니라 어둠이 평생토록 나와 함께해줄 것이란 안도감이리라. 성희가 떠나고 남은 빈자리는 어둠이 채워줄 것이다. 어둠이 내 남은 인생의 새 동반자가 되어줄 터였다. 나는 각오를 하고, 눈을 떴다.
내 눈동자에 맺힌 것은 셀 수 없이 많은 별빛이었다. 천장이 보여주던 별과는 차원이 달랐다. 내가 상상했던 순수한 검은색 역시 무척 아름다웠으나, 어둠은 단지 별이 돋보이기 위한 배경에 불과했다. 수많은 별은 전부 다른 모습이었다. 모두가 각기 미세하게 다른 색과 크기를 지니고 있었다. 어떤 별들은 서로 뭉쳐 은하와 은하수를 이루고 있기도 했다. 저곳에서도 우주 팽창이 일어났는지 내가 생각한 것보단 간격이 넓었지만, 덕분에 거대해져 오히려 웅장한 모습이 되었다. 그 별들은 마치 내게, 인류에게, 혼자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생각할 틈도 없이 내 눈에선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우주에 암흑만이 가득할 거라 굳게 믿은 나는 우주가 이렇게나 별이 촘촘히 박힌 모습으로 나를 반겨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한동안 넋을 잃은 채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성희는 늘 말했다. 결과가 정해져 있어도 할 수 있는 일은 많다. 과정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렇기에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리 믿는 성희였기에 병이 있음에도 과학에 힘을 쏟았고, 자신이 없을 세상을 위해 희생했다. 그리고 이제는 나도 그것을 믿는다. 밤하늘에 별이 없더라도, 나는 그 하늘을 보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그리고 그 결과, 수많은 별이 지금 내게 오롯이 닿고 있다.
나는 마이에게 에너지 큐브를 투입하고 우주선으로 돌아와 한참을 고민하고 나서야 별이 보인 이유를 눈치챌 수 있었다. 별 자체는 우주론적 사건의 지평선 너머로 떠난 게 맞았다. 하지만 별빛은 별이 남긴 과거의 그림자. 그들이 남긴 빛이 몇백억 년을 여행해 내게 도달한 것이었다. 성희는 분명 내가 하늘에 별이 없다고 생각한 것도, 사실은 별을 볼 수 있다는 것도 전부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내 착각을 정정해주지 않은 것은, 분명 내게 이 감동을 전해주고 싶었기 때문이겠지. 덕분에 성희의 말대로 모든 별빛을 내 눈과 기억, 온몸에 빼곡히 담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걸 성희에게 전해주는 것은 지금이 아니어도 좋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밤하늘엔 별이 있으니까.
나는 오늘도 별을 보며 누군가를 기다린다. 별 사이 자리한, 그러나 그 사실을 모르는 저 검은 원으로부터 찾아올 누군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