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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순환

호수
2024년 10월호
작가
이진명
발행일
2024/10/01
언어
한국어
장르
소설
이몽룡은 성춘향을 갈아마시고 싶었다. 왜냐하면 성춘향은 부자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성춘향은 쉽게 갈리지 않았다. 이몽룡은 그날 성춘향을 납치해서 믹서기에 넣었다. 그런데 전원을 켰는데도 성춘향이 갈리지 않는 것이었다. 오히려 성춘향은 믹서기에서 사뿐사뿐 걸어나와서 이몽룡에게 훈계조로 얘기했다. “제가 믹서기 따위에 갈릴 만한 사람 같습니까?” 성춘향은 아이언맨 슈트를 입고 있어서 믹서기로는 갈 수 없었다. 아이언맨 슈트는 물론 돈으로 샀다. 성춘향은 망연자실한 이몽룡을 납치해서 귀가했다. 성춘향은 이몽룡을 갈아마시고 싶었다. 이몽룡이 진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몽룡을 믹서기에 갈아서 주스로 만들었다. 그런데 여기서도 문제가 있었다. 이몽룡이 갈리기는 갈렸는데 도저히 마셔줄 수가 없었다. 진보는 밥맛이었기 때문이다. 성춘향은 이몽룡이 입에 닿자마자 구역질이 났다. 그래서 화장실로 달려가 속에 있는 것을 게워내려고 변기에 얼굴을 댔다. 그런데 그 순간 그대로 변기로 빨려들어갔다. 변기는 평소에 자기를 깔아뭉개던 성춘향에게 앙심이 쌓여 있었다. 그래서 성춘향을 마셔서 하수처리장에 쌌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성춘향이 정화되지가 않는 것이었다. 성춘향이 걸러지지가 않은 하수처리장은 물 색깔이 성춘향색이었고 냄새는 성춘향 냄새가 났다. 이대로는 서해에 내보낼 수가 없었다. 하수처리장 직원은 상부에 보고했다. “성춘향이 제대로 걸러지지가 않습니다.” 상부에서는 직원에게 지시했다. “그럼 성춘향을 손수 걷어내.” 그래서 하수처리장에서는 직원들을 불러모아 물에서 성춘향을 직접 걷어냈다. 소고기무국을 끓일 때 한 군데 모인 기름을 국자로 걷어내듯이 국자로 성춘향을 물에서 걷어낸 것이다. 소고기무국은 성춘향이 아주 좋아하는 음식이다. 부위는 국거리용 앞다리살이 좋다. 며칠에 걸친 작업 끝에 성춘향은 80L 비닐봉투에 담기게 되었다. “어떻게 할까요? 그대로 방생할 수는 없는데.” 직원이 상관에게 물었다. “성춘향 자택에 이몽룡이 있다 하지 않았나?” “네 맞습니다.” “그 사람이랑 섞어서 중화하게나.” 그래서 직원들은 성춘향네 집을 찾아갔다. 식탁에는 성춘향이 먹다 남긴 이몽룡이 한 병 있었다. 직원들은 이몽룡을 성춘향과 섞었다. 둘이 섞여 중화가 되었다. 그래서 안심하고 직원들은 이들을 서해에 방류할 수 있었다. 이몽룡-성춘향은 해류를 타고 오대양을 유영했다. 놀랍게도 바다에는 이런 물질이 이몽룡-성춘향 말고도 많았다. 바다에 떨어진 첫날 이몽룡-성춘향은 갈아마신 종북좌파빨갱이와 갈아마신 수구꼴통틀딱충을 만났다. 다음 날에는 갈아마신 대깨문과 갈아마신 대깨윤을 만났다. 그 다음 날에는 갈아마신 짱깨와 갈아마신 쪽발이를 만났다. 그렇게 지구를 돌며 물질을 만나고 다니던 어느 날 이몽룡-성춘향은 하늘로 둥실둥실 떠올랐다. 바다를 유영하다가 태양열에 가열되어서 증발했기 때문이다. 이몽룡-성춘향은 구름을 거쳐서 비가 되어 대한민국에 내렸다. 그런데 그날 한국 전역에는 번개가 쳤다. 이몽룡-성춘향은 비로 내리다 말고 날벼락을 맞아 이몽룡과 성춘향으로 분리되었다. 다행히 간만에 내린 뇌우로 새로 결합할 이념은 지천에 널려 있었다. 이몽룡과 성춘향은 제각기 다른 이념과 결합했다. 이몽룡은 자기와 결합한 이념과 통성명을 했다. 그는 자기가 갈아마신 안티페미니스트라고 소개했다. 성춘향도 자기와 결합한 이념과 통성명을 했다. 그는 자기가 갈아마신 페미니스트라고 소개했다. 이몽룡-안티페미니스트는 북한강을 흘렀고 성춘향-페미니스트는 남한강을 흘렀다. 경기도 양평군에 사는 정치유튜버 변학도는 일주일에 한 번 두물머리를 산책한다. 그날 날이 개자마자 변학도는 두물머리에 나갔다. 뇌우가 언제 쳤냐는 듯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았다. 그런데 생수를 사려고 편의점에 들어가던 길에 물방울이 한 방울 강에서 튀어 변학도의 입으로 들어갔다. 이몽룡-안티페미니스트가 들어간 물방울이었다. 변학도는 그 자리에 우뚝 멈춰섰다. 입에서 참을 수 없이 역겨운 맛이 났다. 변학도는 땅에 대고 구역질을 했다. 안티페미니즘과 진보주의가 섞인 토사물이 바닥에 쏟아졌다. 구역질을 하느라 열린 입으로 물방울이 하나 더 들어갔다. 성춘향-페미니스트가 들어간 물방울이었다. 변학도는 새롭고도 똑같이 역겨운 맛에 편의점 정문 앞에 주저앉아 구역질을 했다. 그 와중에 이몽룡과 성춘향은 변학도의 식도에서 치고박고 싸우고 있었다. 누가 이기고 있었을까? 막상막하였다고 하자. 변학도는 끝없이 구역질을 했다. 이몽룡-안티페미니스트와 성춘향-페미니스트가 한번 부딪힐 때마다 욕지기가 치밀었다. 두물머리에서 튄 물방울은 변학도의 열린 입으로 하나둘씩 들어갔다. 변학도의 구강과 식도는 어느새 갈아마신 대깨문, 대깨윤, 더듬어만진당, 국민의짐, 조중동, 한경오, 종북, 좌파, 빨갱이, 수구, 꼴통, 틀딱충, 꼴페미, 한남충, 피싸개, 번탈남, 홍어, 쌍도, 개독교, 그린일베, 좌음, 1번남, 2번남, 주사파, 토착왜구, 알파메일, 베타메일, 시그마메일, 오메가메일, 퐁퐁남, 김치년, 순문충, 웹소충, 급식충, 학식충, PC충, 비건충, 맘충, 롤충, 일베충, 디시충, 여시충, 이대남, 이대녀, 똥팔육, 꿘, 비꿘의 전쟁터가 되고 있었다. 구강전쟁이 격화되면 될수록 변학도의 구역질은 점점 심해졌다. 보다 못한 편의점 알바생이 하던 일을 다 집어치우고 변학도에게 다가왔다. “선생님, 괜찮으세요?” 알바생의 눈에 변학도가 게워낸 토사물은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깟 토사물에 눈길이 가기에는 변학도의 상태가 너무 심각했다. 알바생은 119를 부르기로 했다. 그런데 알바생이 119의 9까지 누르던 그때 변학도가 구역질을 한 차례 더 하더니 그대로 죽었다. 흔들어 깨워봤지만 미동도 없었다. 알바생이 겁에 질려서 아무것도 못 하고 있는데 변학도가 한번 부르르 떨더니 누런 액체를 방출했다. 근육이 이완되어 나온 소변이었다. 119 대원들이 변학도의 시체를 인수해갔을 때 오줌은 땅에 흡수된 지 오래였다. 두물머리 지하 300m 지점에서는 진보, 보수, 페미니스트, 안티페미니스트, 그밖에 아직도 전쟁 중인 물방울을 실은 오줌이 지하수를 타고 서해로 흐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