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전쟁에서 돌아왔을 때 처음으로 찾아간 곳은 가족의 집이었다. 한 손으로는 의병 제대 명령서를, 다른 손으로는 전동 휠체어 손잡이를 쥐고 집 앞에 도착했을 때 집은 폭격을 맞아 사라져 있었다. 사실 그는 집도 가족도 지난 4월의 폭격으로 한순간에 사라졌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사기 저하를 우려한 정부가 비보를 전하는 것을 금했고, 제대 당일에 사령관이 네 집도 가족도 다 폭격에 사라졌다고 건조한 목소리로 통보해주고서야 알게 되었을 뿐이다.
비보가 정말인지 확인한 다음 그는 군인연금의 증액을 신청하러 시청으로 갔다. 시청으로 가는 길거리에서 그는 이전에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휠체어들이 유난히 눈에 띄었다. 그들 중 태반은 자주색 휠체어를 타고 있었다. 의병 제대자에게 국가에서 대여해주는 휠체어는 다 자주색이다. 그들은 대부분 서쪽을 향해 가고 있었고 그 방향으로 가면 시청이 나왔다. 그는 그들을 따라 서쪽 도로로 향했는데 처음에는 휠체어가 한두 대밖에 없었으나 시청에 가까워질수록 그 수가 많아져 나중에는 휠체어 행렬이 되었다. 차도로 다니는 휠체어에 경적을 울리던 차들도 휠체어가 자줏빛 행렬을 이루자 더는 경적을 울리지 않고 조심히 피해 다녔다. 시청에 이르렀을 즈음 그는 왜 휠체어가 이리도 몰려 있는지 알게 됐다. 시청의 군인연금 창구가 하나밖에 없었던 것이다. 휠체어가 한 대 들어가 20분을 행정 절차로 씨름하고 나오면 그새 휠체어 5대가 줄에 새로 들어왔다.
입구에서 주차장까지 구불구불 이어진 보랏빛 줄에 30분째 서 있자니 땀이 났다. 그러나 8월의 땡볕에도 사람들은 계속 줄을 섰다. 전쟁이 패색이 짙어지자 정부는 온갖 예산을 삭감했고 그 중에는 군병원에 투입될 전기료도 포함되었다. 에어컨을 틀기도 빠듯해지자 같이 입원했던 환자들은 차례차례 열사병으로 죽어갔다. 다행히 그는 더위에 강했고, 군병원에서 살아남은 부상병은 다 그랬다.
군병원의 더위를 회상하던 중 그의 눈앞에 사람이 불쑥 나타났다. 뻥튀기상이었다. 상인 여럿이 줄을 돌면서 뻥튀기, 식혜, 매실차를 팔고 있었다.
“하나 사세요!” 뻥튀기상이 한 묶음을 내밀었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전투식량보다 맛있어요!” 그가 뻥튀기상을 노려보자 뻥튀기상은 입을 다물고 그의 뒤편으로 자리를 떴다. 그가 부상을 입을 무렵 전선에 보급됐다가 단체 식중독을 일으켰던 전투식량의 썩은내보다는 뻥튀기의 향이 훨씬 달기는 하였다. 그는 뻥튀기상을 뒤로하고 줄을 계속 서다가, 2시간째에 시청 내부로 들어갔다.
시청 내부는 자줏빛 휠체어, 군복을 입은 군인, 민간인, 아이들, 뻥튀기상, 식혜상, 쥐로 가득했고, 그 모든 사람들 앞에는 책상에 앉아 서류를 뒤적이고 새치기하지 말라고 고함을 지르는 공무원들이 있었다. 원래 청사가 사라져 임시로 세운 컨테이너 시청사는 햇빛은 막아줬으나 환기가 잘 되지 않아 공기가 탁했고 무엇보다 내부에 꽉 들어찬 사람들의 체열 때문에 여전히 더웠다. 공무원들만이 부족한 전기로도 돌아가는 선풍기를 쐬며 일을 보고 있었다.
인파 속에서 잠시 줄을 놓쳤던 그는 가까스로 줄을 되찾아 마저 기다렸고, 곧 창구에 들어섰다. 창구 건너편의 공무원이 지친 표정으로 종이와 펜을 건넸다.
“작성하세요.” 공무원은 그 말만 하고 다시 서류 작업에 열중했다. 인터넷 망이 폭격으로 소실되고 전기도 부족해짐에 따라 기존의 전산화된 행정 체계는 모두 서류 작업으로 전환됐다. 공무원은 그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쉼없이 타자기를 쳤다. 그는 뻥튀기상이 호객하고 쥐가 찍찍거리고 사람들이 항의하느라 언성을 높이고 아이들이 우는 가운데 집중해서 타자를 치는 공무원에 속으로 감탄을 하며 서류를 들여봤다. 「군인연금 증액신청서」라고 적혀 있었다. 그는 서류의 각 난에 정보를 적었다. 이름, 주소, 최종 계급, 소속 부대… 그는 ‘병명’ 난에 ‘하지절단’이라 적고 ‘증액 사유’에 ‘부상으로 생계 유지 곤란’이라 적었다.
필요한 것을 다 기입하고 서류를 내니 공무원이 건성으로 읽기 시작했다. 그는 접수가 됐다는 말을 들을 때까지 잠자코 기다렸다. 그런데 내내 풀린 눈으로 일관하던 공무원이 갑자기 서류를 뚫어져라 보더니 계산기를 꺼내들어 두드렸다. 그가 놀란 눈으로 보자 공무원이 무표정에서 미안한 표정으로 안색을 바꾸며 입을 열었다.
“가족이 전부 돌아가셨다구요?”
“……네.”
“부양 가족이 없으면 필요 연금액이 더 낮아져요. 선생님께서는 부상 때문에 느는 금액보다 부양 가족 없음으로 줄어드는 금액이 더 많습니다.”
“……그럼 신청서 돌려주세요. 접수도 취소해주시구요.”
“그게……” 공무원이 난처한 얼굴을 했다. “연금을 감액할 수 있다는 게 확인되면 법적으로 무조건 접수를 해야 합니다. 증액은 접수 취소가 되지만 감액은 되지 않아요.”
그는 뭐라 더 항의를 하였으나 공무원은 이미 그의 신청서를 접수함에 넣어둔 후였다. 그는 총을 어떻게든 구해 시청 내 사람들을 다 쏴죽이는 상상을 하다가 이내 단념하고 뒤로 돌아 건물을 나갔다.
건물 밖에는 여전히 자줏빛 휠체어 행렬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가 손잡이를 앞으로 쭉 밀어서 이동하는데 식혜상이 그의 앞길을 막았다.
“한 잔 하세요!” 그러면서 식혜상은 식혜 한 잔을 작은 사발에 담아 그에게 건넸다. 그는 식혜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목넘김이 시원찮고 쌀도 거의 쭉정이에 불과했다. 그가 다 마시자 식혜상이 손을 내밀었다.
“5,000원입니다.”
그는 휠체어를 이리저리 이동하여 식혜상을 지나쳐보려 했으나 그때마다 식혜상이 얼른 발을 내밀고 가로막아 지나칠 수 없었다. 그가 5,000원을 쥐여주고서야 식혜상은 비로소 그를 놓아줬다.
식혜상을 물리고, 그는 계속 손잡이를 앞으로 쭉 민 채로 달렸다. 슬슬 저녁이 되어 기온도 내려가고 바람도 시원했다. 뒷차의 경적을 들으며 도로를 달리던 그의 얼굴로 포스터 한 장이 날아붙었다. 그는 제자리에 멈춰(다시 경적을 들었다) 포스터를 얼굴에서 떼어냈다. “당당히 나가서 싸우라! 국가가 그대에게 보답하리라.”라고 적힌 모병 포스터였다. 그는 가만히 포스터를 들여다보다가(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지나갔다) 내던져버리고 다시 손잡이를 앞으로 밀었다. 집을 잃은 사람들을 위한 쉼터까지 가려면 갈 길이 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