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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진행성

호수
2026년 3월호
작가
송민
발행일
2026/03/31
언어
한국어
장르
소설
역겨운 묘사 주의
01.
데미안 허스트,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살아있는 자의 마음 속에 있는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 (The Physical Impossibility of Death in the Mind of Someone Living)은 영국의 예술가이자 영 브리티시 아티스트 (YBA)의 주요 멤버인 데미안 허스트의 1991년 작품이다. 유리판을 씌운 철골조에 포름알데히드를 채우고 뱀상어 한 마리를 그 안에 박제해 둔 구성을 취하고 있다.
2025년 3월 한국 현대미술관에서 모조품의 전시가 예정되어 있다.
워낙에 유명한 작품이니까. 뭐...말 안 해도 알겠지만은.
진은 뱀상어를 몰랐다. 예술도 몰랐다. 그러나 시급 만 오백 원과 만 칠천 원의 차이가 시사하는 바에 관해서는 잘 알았다.
근데 젊은 학생이 이런 궂은일을 잘 할 수 있을까 모르겠다 내가. 비위상한다고 도망가고 그러면 우리가 곤란해져요, 이게 팀으로 하는 작업이라.
진은 비위 상하는 법을 몰랐다. 형식상의 면접에서 유일하게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는 항목이었다.
K는 특대형 스티로폼 상자의 뚜껑을 장홧발로 걷어차 벗겨냈다. 이 친구가 오늘 네가 작업할 놈인데, 인사라도 한 번 해둬. 핏기로 얼룩덜룩한 연분홍색 얼음들이 와르르 튀어나와 시멘트 바닥에 부딪히며 듣기 싫은 소리를 냈다. 진은 상자 안 잿빛 덩어리의 부피감에 움찔했다. 대강 머릿속에 가늠해두었던 규격을 아득히 벗어나는 크기였다. 그는 그 덩어리가 죽음의 압도감이란 주제에 어울리는 소재임을 내심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상자 안의 뱀상어는 뜻밖에도 아직 살아 있었다. 지느러미는 미동조차 없었고 아가미만이 아주 느릿하게 움찔였다. 그것의 아가미가 열릴 때마다 붉은 선 안으로 날카로운 얼음 조각이 말려들어가 내상을 입히고는 선홍색 물로 녹아 흘러나왔다. 진의 시선이 무의식적으로 그것의 눈을 쫓았다. 그 거대한 안구는 그저 허연 스티로폼 덩어리의 실루엣만을 반사했다. 고통이나 공포의 기색을 읽어낼 수 있을 터 없었다. ...괜히 장난친다고 입 근처에 손 가져가지 말고. 뒤에서 K가 알만하다는 듯 한 마디 툭 던졌다.
작업 내용은 간단했다. 진은 K와 나란히 스티로폼 상자 옆에 쭈그려 앉았다. K의 손이 허연 약품통을 꺾어 들어 뱀상어의 아가미로 흘려넣었다. 뱀상어는 헐떡대기 시작했다. 폐가 아닌 아가미로 숨을 쉬는 것들도 헐떡댈 줄 안다는 사실을 진은 처음 알았다. 검붉은 틈새로 희여멀건하고 긴 것들이 언뜻언뜻 비쳤다. 곧 그것들은 미끈한 몸체의 표면 위로 울컥 쏟아져나왔다.
저게 기생충인데, 저거 저렇게 해도 제대로 제거가 다 안 돼서 이런 곳 안쪽에 이렇게 들러붙어 있거든? 이런 거를 내가 준 핀셋으로 다 집어서 벗겨내면 돼. 전시용이니까 가급적 손상 없게.
진은 말없이 뱀상어의 아가미를 헤집는 K의 핀셋 끝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내장에서부터 올라오는 불쾌감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겸을 잊어버리고 일에 집중해야 했다. K는 제 얼굴이 굳어진 이유를 오해하기라도 했는지 씩 웃었다.
냄새 많이 나지.
저게 진짜 원래는 비린내만 나는데 약이랑 섞이면 좀 심하긴 해. 좀, 뭐랄까. 죽음의 냄새라고 해야 하나.
대답할 말을 고르기가 싫어 진은 핀셋을 꽉 쥐었다.
02.
죽음의 냄새. 진은 그 말을 뱉어내던 K의 표정을 머금어 천천히 씹었다.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식상한 단어의 조합일 뿐인데도 버스정류장에서 집까지 걸어오는 10분 동안 그의 정신을 붙들어두기에는 충분했다. K의 거의 모든 언어는 사회에 기반했다. K같이 상상력이 매마른 인간이 문학적인 수사를 알 리 없었다. 그렇기에 진은 그 죽음의 냄새라는 관용구가 보편의 시각에서 드라마틱한 과장이 아님을 인정해야 했다. 침을 삼킬 때 언뜻 입 안이 쓴 듯도 했다. 그러나 그 생각도 다른 모든 생각들과 마찬가지로 그를 빠르게 지나쳤다. 현관문 번호키를 누를 때 진은 K를 잊었다. 고작 거슬리는 표현 두어 마디에 머물러 괘념하기에 그는 이제 무뎠고 할 일은 예나 지금이나 많았다.
야, 고래 봤냐 그래서? 만졌냐?
고래가 아니라 뱀상어야.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공기가 확 덮쳐왔다. 목소리와 냄새가 이미 하나로 뒤엉켜 분간해낼 수 없었다. 숨으로 나오는 것과 피부로 나오는 것. 그것이 죽음인지 아닌지는 몰라도 달갑지 않은 악취였다. 끈덕지게 달라붙는 겸의 생흔을 떼어놓기 위해 진은 욕실 문을 닫았다. 수돗물에서는 소독약 냄새가 났다. 다시금 청결과 죽음을 가로짓는 선을 제대로 머릿속에 그려넣어야 했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수돗물은 따뜻했지만 끈질기진 못했다. 그것은 그저 배수구로 흐르기 위해 그의 나신을 스쳐갔다. 그의 손가락 역시 지체없이 머리카락의 비눗기를 헹궈냈다. 모든 단계가 지극히 자연스러운 무의식의 협응이었다.
상념에 젖어 몇 분이고 샤워기 헤드에서 떨어지는 물을 얼굴로 받아내던 때가 있었다. 연민 따위의 소모적 정신활동에 할애할 에너지가 없다 단정지은 이후에는 관두었다. 몸이 머뭇거려 굼뜨게 둘 수 없었다. 유려함은 의지 부재의 특권이고 시간적 여유는 뱀상어의 특권이다. 진은 그렇게 믿기로 정했다. 언젠가 뱀상어가 되면 균열의 틈을 들여다보는 데에 골몰해보겠노라. 그러나 아직 진은 인간이었기에 5분 안에 샤워를 끝마치고 설거지를 해야 했다. 나이가 들수록 마음 대신 몸이 바빴다.
오후 여섯 시. 이미 해가 거의 넘어갔는데도 겸은 불을 켜지 않고 있었다. 컴퓨터 게임 화면에서 흘러나오는 이질적인 색깔들만이 간간이 방 안 집기들의 실루엣의 그림자를 그려냈다. 진은 온갖 잡스러운 빛들로 얼룩덜룩한 겸의 얼굴을 멀거니 바라보았다. 무가치한 짜증이 입가에 스쳤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뭐하냐. 눈 다 버리려고.
...롤.
시작한 지 몇 분 됐는데.
17분. 뭘 자꾸 물어. 말 좀 걸지 마라.
진은 말을 거는 대신 전등 스위치를 거칠게 눌렀다. 그의 시선이 일그러진 겸의 표정을 가볍게 지나쳐 침대에 닿았다. 이불보의 흐릿한 갈색 얼룩들 위로 점점이 검붉은 얼룩이 찍혀 있었다. 진은 힘들이지 않고 그것을 벗겨낸 뒤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찬물 손빨래에는 이골이 났다.
아직 게임 안 끝났네.
어. 바빠 지금.
진은 나이가 들어도 몸이 바쁘지 못해 불운한 인간의 유일한 오락거리를 존중해보려 애썼다. 그러나 입은 제 마음대로 움직였다.
근데 형.
바쁘다니까. 왜.
그 손가락은 언제 마비되냐.
겸은 그저 껄껄 웃고 말았다. 이제 장로 1분이니까 진짜 좀 닥쳐라. 둘의 모든 언어들은 이미 너무 무뎌져 타성의 선을 넘을 수 없었다.
침대에 엎드려 누운 겸의 티셔츠는 진물로 얼룩덜룩했다.
...그래서. 국립미술관에 전시될 고래가 네가 오늘 본 그 고래다?
아니.
어제는 뭐 고래 잡으러 간다며.
아니 씹,
겸이 일부러 제 심기를 툭툭 건드리고 있음을 모르지 않았다. 진의 목소리가 커질 때마다 겸은 웃음기를 감추지 못하고 히죽댔다. 어 그래그래. 말해봐. 고래가 뭐 어쨌다고? 진은 겸의 티셔츠를 거칠게 잡아올렸다. 뱀상어라고. 살 썩는 내가 확 올라왔다. 진이 핀셋으로 등허리의 곪은 살을 긁어내는 내내 겸은 말이 많았다.
겸이 죽기를 죽도록 바랄 때가 있었다.
03.
겸은 그해 죽었다. 술맛이 달았다. 혹은, 저녁마다 술을 마실 자유가 달았다. 물론 진은 해방감을 마음껏 만끽할 정도로 얼굴 두꺼운 인간은 못 되었다. 일탈은 사소했다. 그는 한 달에 8만 원짜리 헬스장을 등록해서 매일 한 시간 반을 운동에 투자했고 한 달에 칠천 원짜리 넷플릭스 정액권을 결제해서 일요일에 세 시간을 티비 앞에 앉아 흘려보냈다. 겸이 쓰던 물건을 마주할 엄두가 안 난다는 어린애같은 이유로 이백십칠만원짜리 휠체어를 중고나라에 올리지 못하고 아파트 분리수거장에 버렸다. 충동적으로 아르바이트 세 개 중 한 개를 그만두었지만 일주일 뒤 찬장의 참치캔 개수를 헤아려보며 조금 후회했다. 게을러진 몸은 종종 징벌이었다. 인간인 이상 편의점 포스기 앞에서보다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 앞에서 침투적 사고에 더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표면상의 루틴은 어긋나는 법이 없었다. 오히려 그 모든 집안일들은 자기망각이라는 중대한 책무를 띤 하나의 의식으로 여느 때보다도 훌륭히 기능해주었다. 이미 골백 번도 해 본 작업 위로 손만 분주하게 둘 때가 그나마 나았다. 진은 싱크대 배수구의 덮개를 열어 음식물 찌꺼기를 손으로 긁어냈다. 기름이 굳어 떡마냥 뭉개진 고깃조각과 다 불어터진 면발 사이로 손을 욱여넣은 뒤에야 손가락 사이로 기어들어와 꿈틀거리는 허연 애벌레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들이 피부를 건드리는 감각이 한 발짝 늦게 신경줄을 건드렸다. 고작 구더기들을 보고 고인을 떠올려야 하는 제 처지가 애석했다. 상념에 잠기지 않으려 손등 위로 락스 섞인 물을 부었다. 미처 손이 닿지 못한 사각의 밥풀 조각들이 원래의 수명보다 몇 배는 빠른 속도로 삭아들어갔다. 독한 화학약품 밑에서 허연 애벌레들은 밥풀 조각과 구별될 수 없었다.
손톱 밑이 따끔거릴 때쯤 애벌레라 부를 만한 형태는 죄 사라졌다. 어그러진 실루엣의 그것들은 흐늘거리며 검은 구멍 안으로 흘러들어갔다. 이유도 없이 윗가슴이 확 조여왔다. 선명한 감각이 낯설어 그것이 통증인지 이물감인지 분간이 어려웠다. 헛구역질을 하고도 제풀에 황당해 얼떨떨하게 입 위를 가린 왼손을 떼어냈다. 한동안 단련할 일이 없었던 비위가 약해진 성싶었다. 싱크대 위로 뱉어낸 침덩어리가 느릿하게 배수구 구멍을 향해 나아갔다. 진은 멍하니 그 자취를 눈으로 쫓았다. 그 진득한 무언가가 제 입에서 나왔단 사실이 어쩐지 생경했다.
팔뚝까지 스민 소독약 냄새를 어찌하지 못해 결국 그는 욕조에 물을 채웠다. 몇 년 동안이나 2주에 한 번씩 락스로 욕조 벽을 문질렀어도 제 몸 담가보기는 처음이었다. 물은 눈대중보다 많이 넘쳤다. 욕실 바닥의 슬리퍼가 떠내려가 배구수멍에 처박혔다. 거울이 뿌예진 덕에 몸의 감각에 집중하기가 쉬웠다.
락스 물이 지나간 제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손등은 멀쩡했다. 손톱조차도. 고작해야 허옇게 각질이 일어났을 뿐이었다. 몸이 움직이지 않자 수면 역시 잠잠해졌다. 물은 결코 먼저 움직이는 법이 없었다. 뜨겁고 축축한 공기에서는 비누 향이 났다. 진은 제 사고가 마음대로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물이 다 식도록 진은 죽음을 생각했다.